
채워주시는 나의 하나님(빌4:19-23) |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길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옥에 갇힌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길 간구했습니다.(19절)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가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나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신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실제였습니다. 살아계셔서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며, 결코 나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시는 ‘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처럼 바울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의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생생한 실제로, 살아계신 분으로 느끼고 있습니까? 그분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풍성한 대로 채우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예수 안’입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하나님이 채우시는 풍성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채우는 역사는 예수 안에서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부요함을 구현하는 매체인 동시에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주님 안에 거해야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아도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풍성함은 하나님께서 채우신 풍성함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에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21절)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문안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번듯한 교회는 없었습니다. 대신 친밀감과 사랑의 분위기가 넘치는 교회가 존재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어려움은 없었는지를 살피며 서로 도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염려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특징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예수님의 은혜가 빌립보 교인들의 심령에 있기를 기도하며 글을 갈무리했습니다.(23절) 바울은 편지의 첫머리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빌1:2)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라고 말합니다.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은혜로 살았고, 앞으로도 주님의 은혜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불분명합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을 끝까지 세워 줄 것이며,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