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빌4:14-18)

  바울은 자신을 도운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달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교회들은 바울의 어려움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끝까지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사를 전하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자신을 더 도와달라는 취지로 오해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다.’(17a)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들이 선물을 보낸 것은 잘한 일이지만, ‘내가 선물을 바랐던 것은 아니고, 또한 더 도와달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선물이 있으면 행복하고 선물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결코 자신의 유익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빌립보 교인들이 더 풍성해지길 원했습니다.(17b)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울의 삶은 기본적인 생활도 누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빌립보 교회의 후원금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겠습니까? 그래서 그 후원금이 풍부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풍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풍성하다고 한 것은, 바울이 풍부와 가난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즉 만족(자족)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금이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18b)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을 도운 것을 하나님께 드린 제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을 자신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행동이 낸 향기가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드린 헌금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제사’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압니다.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돕고 있으니, 단순히 자신을 위한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것으로 여겼고, 그들의 나눔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제사를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헌금)가 있고 받지 않는 예배가 있습니다.

 주님은 가난하게 살고 있던 여인이 드린 두 렙돈에 주목하셨습니다.(눅21:1-4) 그리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나눔을 주님이 주목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나눔이 물질에만 있지 않습니다. 여러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돈이나 제물로 드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나눔)가 되길 기원합니다.

  서로 나눔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물 흐르듯 낮은 곳으로 흘러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주님의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주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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