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39:2)

  요셉은 분명히 형통한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요셉이 형통한 이유를 ‘애굽의 총리’가 된 화려한 결과를 보고 형통을 판단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셉의 삶은 객관적으로 볼 때, ‘형통’이라는 표현이 쓰일만큼 그렇게 평탄하고, 순조로운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는 그가 형통한 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요셉이 형통한 이유를 ‘애굽의 총리’가 아닌, 요셉이 겪은 삶의 과정들을 살펴보며, 그가 정말 왜 형통한 자인지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라는 것은 결과(애굽의 총리)보다도 과정(요셉이 겪은 어려움과 문제들)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발 맞춰 가느냐가 훨씬 중요하고 가치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신앙 생활 가운데에서 결과보다 과정에 더 집중하여 하나님과 함께 함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형통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어떤 열매를 맺었느냐보다도,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는가에 있습니다. 여기서 형통함이라 번역된 히브리어 ‘찰라흐צָלַח’ 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잘되다, 번영하다, 평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현이지만, 더 중요히 살펴봐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 이 표현을 사용했는가입니다. 그 절대적인 기준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자’ 즉, 그렇게 여김받아 마땅한 자에게 ‘형통’하다고 표현함을 볼 수 있습니다.(2절, 3절, 23절) 그래서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죽임을 당할 그 찰나에 이스마엘 상인들이 그곳을 지나가게 됩니다.(창37:25) 그래서 형제 유다는 동생을 죽이지 말자며, 마침 저 보이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물론 노예로 팔려가는 것이 형통하다 할 수 없겠지만, 우발적 죽임을 당할 뻔한 요셉에게 그 타이밍에 이스마엘 상인들이 지나가서, 노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형통한 자’였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정말 많았던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통해 위기를 넘기며 ‘형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형통한 자 요셉의 큰 특징은 바로 ‘주변으로 복이 흘러갔다’는 것입니다. 노예에 불과한 요셉이었지만, 애굽의 바로 왕의 최측근 보디발의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보디발에게 신뢰를 얻어 가정 총무가 되고, 보디발의 소유를 위탁받습니다. 형통한 자 요셉을 통해 보디발의 집에 여호와의 복이 임하고,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이르기까지 복이 흘러감을 보게 됩니다.(4,5절) 복의 형태가 조금 특이하고 익숙치 않지만, 요셉의 주변을 보며 그가 머문 곳은 복을 받게 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보디발의 가정 뿐만 아니라,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가서까지 주변에 복을 흘려보내는 자가 됩니다.(21절)

 요셉이 형통하다 하여서,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이 탄탄대로 순조롭게 가지는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고, 자신의 삶에 찾아온 풍랑을 헤쳐나가게 되고, 그것을 넘어 주변에 복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가정에도, 일터에도 그리고 우리 남인천교회 공동체에도 이러한 형통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