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족하는 것을 배웠습니다(빌4:10-13) |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감사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후원금을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의 관심과 응원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큰 기쁨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고백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후원금 안에서 기뻐한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후원금도 기뻤지만, 그것보다 그를 진정으로 기쁘게 한 것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옥에 갇혔기 때문에 상황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히 빌립보 교회의 후원이 끊겼을 때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상황에서도 만족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면,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모든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배웠다.’라는 말은 ‘경험을 통해 습득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도로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는 바울의 만족의 근거가 예수님의 능력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그로 인해 모든 환경으로부터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먼저, ‘비천’을 통해서 ‘만족’을 배웠다고 했습니다.(12절) ‘비천하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평하지 않고 만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두 번 당하는 고난과 가난과 배척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배고픔과 고통에 만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게 계속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주님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능히 견딜 수 있고, 참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풍족함’을 통해서 만족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풍족하면 만족이 됩니까? 아닙니다. “조금만 더…” 하면서 욕심을 더 내게 됩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풍족할 때에 만족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풍족함 속에서도 만족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즉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13절) 자신의 힘으로 모든 환경에 적응해 간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가능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13절의 핵심은 ‘능력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데 관심을 가집니다. ‘믿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환난과 역경도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겨 낼 수 있다는 뜻이며, 어떤 환경에도 만족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참된 만족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 안에 굳건히 설 때 가능합니다. 세상이 주는 고통과 시련은 끝이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만족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