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고 관용하라(빌4:4-5)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반복하여 권면합니다.(4절)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기쁨이 넘치길 바랐던 것입니다. 이때 말하는 기쁨은 단순히 어떤 환경적인 만족에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의 기쁨을 말합니다. 즉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려면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의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채우려 하면 오히려 채울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비웠을 때 주님의 기쁨으로 채워집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과 관계가 바르지 않으면 그가 주시는 기쁨도, 행복도, 평강도, 사랑도 아무것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주 안에서의 기쁨 보다는 세상의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쁨은 찰나적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는 기쁨은 얼마 못 갑니다. 우리가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기쁘지만 곧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고 결국은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세상의 기쁨에 기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기쁨은 주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영혼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기에, 그 누구도 손댈 수 없고, 앗아갈 수도 없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려면 관용을 베풀라고 권면합니다.(5절) ‘관용’이란 ‘넓은 마음으로 남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남의 약점이나 허물을 덮는 것이 관용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불의에 대해 불의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선으로 갚고 의를 행하는 것이 관용입니다. 이처럼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하며 편의를 봐주는 것이 관용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관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도 서로 다투고 있기 때문에 기쁨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또 이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관용을 보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정한 사람, 포악한 사람, 믿음의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남녀노소, 진영을 가리지 않고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관용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바로 주님이 가까이 오셨음을 자각할 때(5b) 관용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주님을 만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주님이 늘 함께하신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주님을 만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늘 의식한다면 관용을 늘 베풀지 않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어떻게 다투며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슬픔과 어려움, 고통이 많은 세상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까?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주님이 내게 베푸셨던 관용을 베푸십시오. 그리할 때, 진정으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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