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구조사(삼하24:1-14)

  본문은 우리가 이해하기 매우 힘든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려고 다윗을 부추겨 인구조사를 하게 했습니다’(1절)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겨 죄를 짓도록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죄짓도록 부추기시는가?’ 우리의 이성으로나 믿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성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최고의 신비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이야기는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하나님은 다윗과 이스라엘을 유익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래서 당장은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순종하길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도구로 다윗을 이용하셨습니다. 다윗은 유혹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다윗이 유혹에 넘어간 것은 하나님이 그를 그냥 내버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다윗이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서 그를 놓아 버리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죄성이 발동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붙잡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죄성이 발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죄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구조사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은 자신의 군대가 얼마나 큰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군인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모든 일들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눈에 보이는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다윗의 상태였으며, 이스라엘의 상황이었습니다. 순수한 신앙이 퇴보하여 세상의 가치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다윗은 곧바로 죄지은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10절) 자신의 마음과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그는 속히 그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7만 명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회개와 기도로 퇴보했던 영성을 되찾았고, 성전을 지을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복을 누리는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항상 순종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늘 민감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복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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