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대로(삼하17:1-14)

  16장을 보면 다윗을 속이는 시바,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척인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5) 그는 이스라엘의 왕권은 원래 사울(베냐민 지파)의 몫인데 유다 지파인 다윗이 왕권을 빼앗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7-8절) 사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에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억지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이의 저주를 듣던 아비새가 그를 죽이겠다고 나섰으나, 다윗은 그를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시므이의 억지 주장을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시므이의 저주의 말을 자신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저주를 들으면서 최근의 자신의 모습에 직면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가족을 죽인 책임은 없지만, 자신이 큰 죄인임을 자각했습니다. 시므이의 말이 그의 폐부를 찔렀습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말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인지를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철저히 낮아져 겸손한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그가 다시 회복하는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했습니다.(15절) 입성한 후에 그는 아히도벨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왕권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20) 아히도벨은 다윗 왕이 예루살렘 왕궁에 남겨둔 후궁들과 동침할 것을 권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압살롬이 다윗보다 월등히 강력하며 왕궁의 실질적인 주인임을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이 일이 왕권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그 일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아히도벨은 두 번째 계략을 내놓았습니다.(17:1-4) 다윗의 군대는 자신감을 잃고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니, 소규모의 군대로 신속하게 다윗의 뒤를 쳐서 반역을 매듭짓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략에 장로들이 만족하며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후새를 불러 아히도벨의 계략이 어떠냐고 묻습니다.(17:5-6) 후새가 누구입니까? 다윗의 친구로 다윗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위장 전향시킨 사람입니다. 곧 다윗의 첩자입니다. 그러니 후새는 아히도벨의 계략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계략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계략은 시간이 걸려도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아서 전면전을 치르자는 것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의 계략을 좋게 여겼던 압살롬과 백성들은 후새의 계략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여론이 금방 바뀐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좌절시키셨습니다.(17:14b) 성경은 아히도벨의 계략과 후새의 계략 중 ‘누구의 계략이 더 좋은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탁월한 계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합당해도 하나님이 허락해야 가능합니다. 곧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대로 우리 인생을 복되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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