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하나님의 궤(삼하6:16-23) |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하는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정치적, 군사적인 안정을 확립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남북이 여전히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신앙으로 그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통치 이념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그 말씀으로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 상징인 하나님의 궤(법궤, 언약궤)를 나라의 중심부에 두고자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법궤를 옮기는 것을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사람들과 논의한 것입니다.(대상13:1-3) 다윗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회중의 여론을 먼저 수렴하였습니다. 물론 백성의 의견을 묻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 일을 시행하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법궤를 옮기는 방법도 잘못되었습니다. 법궤는 반드시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서 옮겨야 하고, 어느 누구도 법궤를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민4:15) 그런데 지금 법궤를 소가 끄는 새 수레에 실어 옮겼고, 웃사는 법궤에 손을 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여 결국 웃사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과거에도 법궤가 수레에 실려 옮겨진 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법궤를 탈취했다가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낼 때 ‘암소가 끄는 새 수레’에 실어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삼상6:7) 이 방법은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블레셋 사람들이 나름대로 고안해낸 쉽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무리 좋아도 그 가치를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세상의 가치로 물들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우리의 편리대로 쉽고 편안한 대로만 하진 않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두려워 법궤 옮기는 것을 잠시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안치했다가 다시 옮깁니다. 다윗은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대상15장) 하나님이 명하신 법대로 철저히 준비하니, 법궤를 운반하는 행렬은 축제였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목소리와 나팔 소리로 즐거움과 기쁨을 마음껏 표현(예배)했습니다.(15) 그러나 다윗의 아내 미갈은 예외였습니다. 그녀는 궤가 오는 것을 내다보다가 다윗이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업신여기며 체통이 없다면서 비난했습니다.(16) 미갈은 법궤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상황에서도 예배드리지 않고, 예배드리는 이들의 외형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그로 인해 미갈은 평생 아기를 낳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22-23) 살아 계신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결국 생명을 잃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