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해지는 다윗의 집(삼하3:1-11) |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 사람들의 왕일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북쪽의 지파들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반쪽짜리 왕이 되었습니다. 한편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왕통을 계승했지만, 아브넬이라는 군사령관이 실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던 아브넬이 사울 왕의 여인 리스바를 겁탈하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이스보셋 왕과 아브넬 군사령관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넬은 자신이 세운 이스라엘의 왕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유다의 왕 다윗을 왕으로 선택합니다. 그는 정치적인 감각과 현실 감각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주군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야망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다윗과 아브넬은 평화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아브넬은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다의 장군 요압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다윗과 아브넬이 협상을 할 때, 요압은 전투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가 전투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다윗과 아브넬이 평화 협상을 맺고 아브넬이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요압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어 아브넬을 붙잡아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을 죽였습니다. 아브넬은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서 왕을 바꾸었지만,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권력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만이 나의 안전이요, 평화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개인적인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해 복수한 것입니다. 평화의 목적으로 온 사람을 속임수로 유인하여 왕의 명령도 받지 않고 죽인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반역 행위입니다. 아브넬이나 요압의 공통점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왕이 필요했지만, 왕의 명령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기준이었고, 자신이 실질적인 왕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살고 있지 않은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과 만족을 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를 과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들입니다. 다윗 왕국이 세워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왕가가 몰락하고 다윗의 집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다윗은 약점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우선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다윗에게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 나라를 섬겼을 때, 그의 집을 강성하게 하셨고 그를 참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점점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며, 왕이어야 합니다. 그 왕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실 때, 진정한 안식과 안정과 평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