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숫자에 있지 않다(삼상14:6-15)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사력에 의해 전의를 잃고 대부분의 군사들이 도망가거나 숨었을 때, 요나단은 부하 한 명을 데리고 블레셋을 습격합니다.(1절)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전쟁을 하나님의 전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에게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쟁은 크기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의 숫자나 힘에 있지 않다는 것’(6절)입니다. 요나단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표징을 구하고(8-10절) 하나님께서 전쟁을 허락하셨다는 징표가 나타나자마자 적군을 공격했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을 떨리게 하셨습니다.(15절) 이 전쟁은 하나님이 직접 주도하고 계시며, 요나단을 사용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이 무모하리만큼 적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용기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담대함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과 떨리는 마음을 갖게 해서 요나단이 승리하도록 하셨습니다.

  한편 사울은 제사장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궤’(70인 역에서는 ‘에봇’으로 표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합니다.(18절)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고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쓰는 도구로,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묻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하나님께 묻고자 했던 일을 중지시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승리가 굳어지는 상황을 보고(20-23), 이상한 명령을 내립니다. 백성이 지쳐있는데 사울은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며 이 명령을 어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맹약을 했습니다. 금식하면 하나님이 보시고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울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도 전쟁에 공헌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꼼수를 부렸습니다. 그는 오직 자기 승리만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아버지의 명령을 모르고 금식 기간에 꿀을 먹어 죽음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을 죽이려 하자, 백성들이 가로막았습니다. 백성들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여 요나단을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왕인 사울의 명이 서지 않고, 사울의 왕권이 급격히 쇠락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세운 왕권이 얼마나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 곧 신앙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지만, 사울은 모든 과정에서 종교적인 행동을 했으나 그 모든 것이 쇼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그는 점점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의 종교 행위는 그를 파멸의 길로 몰아갔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는 요나단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형식적인 신앙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는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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