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온전한 구원을 이룬다(눅17:11-19) |
사무엘이 세운 기념비의 이름은 “에벤에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여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나고, 똑똑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워야 합니다. 사무엘이 이 기념비를 세운 까닭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그가 그러한 믿음으로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갈 때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절) 라고 외쳤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은, 나병을 고쳐 달라는 의미입니다. ‘선생님’은 ‘주인’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불치의 병을 낫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자신들의 노력으로는 나을 방법이 없음을 인정하고 주님이면 고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외친 것입니다. 주님은 나병 환자들의 외침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15절) 병이 나은 사람 중 한 사람(사마리아인)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홉은 예수님께 감사할 이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병을 하나님께서 고치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머지 아홉은 자신들의 믿음으로 고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더 크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인생에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만약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병이 나았으니 자신들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예수님의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자기들이 가고자 하는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불치의 병을 치료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의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그 후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왜냐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감사하여 온전한 구원을 받아 영원의 문제까지 해결 받았지만, 아홉 명은 단순히 나병만 나았을 뿐 옛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새 삶을 얻지 못했고, 영원한 삶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적을 경험하고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 불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날마다 주님과 함께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선물은 없습니다. 최고의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닙니다.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