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가 돌아오다(삼상6:1-9) |
블레셋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탈취한 후, 언약궤를 안치하는 곳마다 독종이 생겨서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반환하고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리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해 왔던 방식대로 즉 우상을 섬기는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즉 하나님을 달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염병을 가져다준 쥐의 모양과 독종의 모양을 금으로 만들어 제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풀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4-5절) 블레셋은 그들의 우상에게 하듯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제사였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당한 재앙이 하나님이 내리신 것인지, 우연한 일인지를 시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젖 나는 암소 두 마리를 수레에 메우고, 젖을 먹는 송아지는 어미에게서 떼어 집으로 보냈습니다.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금 독종과 쥐 모양을 한 형상을 싣게 한 다음, 사람이 끌지 않고 소들 스스로가 벧세메스로 향해 가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어미 소가 새끼들에게 가지 않고 벧세메스로 가면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그렇지 않고 새끼에게로 가면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여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동물의 본능을 이용하여 모든 일을 우연으로 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의 의도대로 하지 않으시고, 그 수레를 벧세메스로 가게 하셨습니다.(12절) 소들이 울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소들은 새끼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게 본능입니다. 그런데 뒤돌아보지도 않고 벧세메스로 갑니다. 하나님이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뤄집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암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13-14절) 그런데 기쁨도 잠시뿐, 법궤를 본 사람들이 죽습니다.(19절)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는 함부로 다루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민4:20) 하나님의 궤를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와 영광이 상실된 시대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벧세메스에서 언약궤를 본 사람들이 죽자, 그 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냅니다.(20-21절) 오늘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와 영광을 가볍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의도대로 써먹으려고만 합니다. 죄를 서슴치 않고 지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며 믿음의 사람이라고 자기만족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당신이 받아야 할 경배와 존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승리하셨고, 찬송과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우상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나 블레셋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내 의도대로 조정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위엄 앞에 두려움으로 서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믿음이 회복되고 주님께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