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20:29-34)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떠나가실 때, 시각장애인들이 예수님께 소리 질러 불쌍히 여겨 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며 꾸짖었습니다.(3—31절)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은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많은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더 크게 소리쳤던 것은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도 부르짖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부르짖는 자에게는 주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시각장애인은 늘 멸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눅 들어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치고, 병자를 고치며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품어 주신다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그들 앞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만 집중했습니다. 주변의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행동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만 보며 어디 가서 큰소리 한번 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주님 앞에서는 큰소리로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불행한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절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소망은 단 하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볼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를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분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부르짖음에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셨습니다.(32절) 이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그들 앞에 멈춰 서서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인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33-34절)
인생의 문제를 사람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전능하신 주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즉 주님의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욕망덩어리인 우리에게 주님의 자비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어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통치자는 주님입니다. 새해에도 주님이 이끄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각장애인들이 경험한 기적과 기쁨을 우리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