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보내신 하나님(눅20:9-18)
본문은 ‘악한 포도 농부의 비유’입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잘 가꾸어 농부에게 세를 주고 오랫동안 출타했습니다. 주인은 농부가 소출하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꼼꼼히 살펴주었습니다. 이제 세를 받을 때가 되자 주인은 농부들에게 종을 보내어 세를 받아 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주인이 보낸 종을 몹시 때린 후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주인은 두 번이나 종을 더 보냈지만, 농부는 두 번째, 세 번째 종도 때리고 능욕하여 빈손으로 쫓아 버립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들을 보내면서 ‘설마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13절)라는 기대를 가지고 보냈는데, 악한 농부는 존중은커녕 그 아들을 아예 죽였습니다. 이처럼 끝까지 주인을 거부하는 악한 농부들을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주인은 자비를 거둬들이고 악한 농부를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했습니다.
이 비유는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악한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언자들을 수없이 보냈지만, 그들은 핍박하고, 배척하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방법으로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는데, 그마저 밖으로 내쫓아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작료를 더 잘 낼 수 있는 이방인들에게 포도밭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주역은 이방인들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비유하셨습니다.(17절) 예수님은 건축자인 종교 지도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처럼 수치와 모멸을 당하고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셔서 인류의 구원의 모통이 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돌 위에 떨어지면 부스러질 것’(18절)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부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롬11:31,새) 순종하지 않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그들이 회개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시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자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켰습니다.
‘포도 농부의 비유’는 농부들의 만행에 강조점을 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끊임없는 사랑으로 기다리며 돌아오길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욕심껏 사느라 하나님을 배반했으나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시면서까지 베푸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다림과 자비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악한 농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 희망도 없이 죽음을 향한 질주를 하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만큼, 나를 배려해 준 것만큼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