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눅19:41-48)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정작 우셨습니다.(41절) 여기서 우셨다는 것은 통곡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정욕에 빠져 평화의 왕인 예수님을 거절하고 심판받게 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을 가진 정치적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힘을 가지고 세도를 부리는 왕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죄인들, 이방인들을 품어 주시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평화의 왕을 알지 못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한 결과로 ‘평화의 성’으로 불리던 예루살렘은 원수들에 의해 포위되고, 어린 자식까지 살아남지 못하며,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멸망할 것을 선언합니다.(43-44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닥칠 재앙을 내다보고 우셨습니다. 이 말씀을 선한 후, 40여 년이 지나 주후 70년에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은 처절하게 파괴됩니다. 이들이 평화의 왕인 예수님을 왜 거부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욕망으로 인하여 영적 어둠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숨겨져 있었습니다.(42절)

  평화의 왕을 거부한 예루살렘처럼 오늘도 세상의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죄와 탐욕, 교만은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해서 진리를 알아볼 수 없게 합니다. 심지어는 예배하는 자리에서도 인간의 탐욕은 멈출 줄 모릅니다. 그 결과는 처절한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보고 우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45절)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장사하는 곳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해야 하는데, 썩은 돈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성전을 돈벌이로 전락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도둑의 소굴이 된 것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46절)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즉 하나님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거룩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이 더럽혀져 있었으니 주님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의 성전은 우리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이 거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깨끗하지 않으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속상해하십니다. 성전이 더럽게 된 것에, 주님이 화를 내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더럽혀진 우리를 보시고 화를 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 안에 있는 시기, 질투, 욕심 등 온갖 악취를 지닌 채, 기도한다면 그 기도가 응답 되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정결한 자가 되어야 하고, 깨끗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추악함을 쫓아내고, 우리가 정결한 성전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주님이 나의 왕이 되고, 왕이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참된 성전으로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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