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에게 이르시되(눅18:31-43)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수난을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능욕을 당하며 죽을 것이고, 죽은 후에 삼 일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31-33절) 하지만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34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충분히 알아듣도록 3번에 걸쳐 수난 예고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깨닫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의 수난은 제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 되고, 자신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막10:35-37) 제자들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었었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17-18장을 통해 여러 교훈을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맹인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35-43절) 맹인을 고치시는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한 맹인(바디메오)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맹인은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b) 사람들이 맹인에게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으나, 맹인은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실체를 알아보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으나, 맹인은 메시아로 보고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제자들은 3여 년 동안 예수님과 동거동락을 했는데도 여전히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고 자신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분으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의 외침을 듣고 소경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께 가까이 오자, 예수님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절)고 물으셨습니다. 맹인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눈을 뜨게 하지 않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42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의 죄가 용서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맹인이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하기 전에 예수님께 요청한 것은,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입니다. 구원의 근거는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긍휼함을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맹인은 그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물론 구원 후에 눈도 뜨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 받고 곧 그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43절) 즉 참 제자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