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자리에 앉으라(눅14:1-14)

  안식일에 예수님이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초청받아 가셨을 때, 수종병을 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식사의 자리에 ‘수종병’ 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식사 자리의 상황을 보면 논쟁을 위해 준비된 듯합니다. 예수님을 초청하고서 ‘그들이 엿보고’(1b) 있었습니다. 식사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예수님의 실수나 잘못을 찾아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상황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제적 질문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3절) 그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보란 듯이 수종병자를 고치셨습니다.(4절) 그리고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5절)며 안식일 본래의 정신과 성격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식사의 자리에 앉을 때 그들은 서로 높은 자리에 앉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보인 모습은 평소의 마음과 사고방식이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스스로를 높이고, 상석을 좋아하며, 자신을 자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상좌에 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8-9절) 좌석 배치는 잔치 주인의 몫입니다. 주인이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왔을 때, 이미 상석에 앉은 사람보고 ‘너는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잔치의 비유는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에서의 심판 자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원리를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리 배치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판단해서 앉힐 것입니다.

  예수님은 끝자리에 앉을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주인이 와서 높은 자리에 앉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11절) 세상의 원리는 쟁취하는 자가 높아집니다.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자가 높아집니다. 그러나 신앙은 역설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누군가를 초청할 때에는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은혜를 되갚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반사 이익을 기대한 선심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은혜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전혀 대가를 바랄 수 없는 자들을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즉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 이런 사람들은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받은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전혀 받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때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갚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다른 질서와 다른 가치관을 요구하셨습니다. 세상은 높아지려고 애쓰지만 예수님은 아래로 내려가 가난한 자들과 교제하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낮아집시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은혜를 조건 없이 나눕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늘의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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