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눅13:22-35)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면서 각 성과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질문합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 이는 최종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구원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회개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몇 명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으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24절)고 하셨습니다. 이는 남의 구원을 걱정하지 말고 너 자신이 구원에 이르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힘쓰다’입니다. 즉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좁은 문’이라고 표현한 것은 구원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올인하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또한 ‘좁은 문’은 고통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를 때 고난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길을 가다 보면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사탄이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 유혹과 방해를 견뎌 이겨내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을 닫는 날이 있고, 닫히면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기회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문이 닫혔을 때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하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할 날이 옵니다.(25절) 교회 다니며 주님의 이름으로 헌신하고, 말씀을 배우지만 정녕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있다면 그 신앙은 거짓입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모른다고 외면당하게 됩니다. 혈통과 전통으로 구원에 이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산 사람이 구원에 이릅니다. 그래서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니 여기를 떠나라고 했습니다.(31절) 하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 고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헤롯 때문에 당신의 계획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즉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환경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갈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꽃길을 걷는 자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주님이 가신길을 가야 합니다. 그 사람이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구원의 문은 좁지만 좋은 길입니다. 그 길의 끝에는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려보지 못한 상급이 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기쁨을 누리며 삽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을 소망하며, 묵묵히 주님의 길을 따라 사는 참 제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