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워가는 공동체(삼상22:1-5)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로 망명하려 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둘람 굴’로 도피했습니다.(1절) 아둘람은 피난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블레셋 통치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다윗이 이곳으로 피신하자, 그의 가족들도 왔습니다. 사울의 위협이 그 가족들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윗의 가족뿐만 아니라, ‘압제를 받는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2절)들도 모여들었습니다. 어느새 아둘람 굴은 압제와 소외당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었고, 그 공동체의 수장은 다윗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다윗을 돕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갈 데가 없어서 온 사람들이고, 오히려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지키는 것도 버거운데 그들의 원통함까지 져야 하는 이중의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오합지졸 같은 무리들이 후에는 잘 훈련된 군대 조직이 되고 나라의 조직이 됩니다. 아둘람 굴에 모여든 미천하고 소외된 400명의 사람들이 다윗 왕국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요단 동편 모압 땅으로 건너가서 그의 부모를 맡깁니다.(3-4절) 모압은 이방 나라이며,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인데 어떻게 그곳에 부모님을 맡길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모압이 다윗의 증조할머니인 룻의 고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다윗 집안이 모압과 인척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가족이 모압 왕과 함께 있는 동안 400명의 사람들과 한 요새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선지자 갓이 모압을 떠나 유다 땅 헤렛 숲으로 이동하라고 권면합니다.(5절) 사울을 피해 이방 땅으로 왔는데, 다시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다윗은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갓 선지자가 유다 땅으로 가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가라는 것이며,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자리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있어야 할 자리는 믿음의 자리였습니다. 헤렛 숲은 요새가 아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그 어떤 곳보다 안전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요새 시며, 보호자며, 구원자입니다.

  한편, 다윗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직접 기브아에 가서 회의를 주관했습니다.(6절) 사울은 베냐민 출신으로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만 끼고 돌았습니다. 자기 지파 사람들이 아닌 다른 이들이 함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편을 가르고, 거짓말을 조장하고, 분노를 발산합니다. 사울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모두를 적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옳은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었고, 간신배들만이 득세했는데 바로 그 간신배가 도엑이었습니다. 도엑은 다윗이 놉의 성소에서 아히멜렉에게 빵과 칼을 달라는 것을 커튼 뒤에서 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사울에게 전했는데,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교묘하게 사울이 좋아할 말로 바꾸어 말했습니다. 그 결과로 아히멜렉과 동료 제사장들과 그의 가족과 짐승들이 죽임당했습니다.(18-19절)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포악함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한지를 잘 보여준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공동체는 포악과 난폭과 죽음의 냄새가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공동체에도 하나님을 떠난 모습은 없는지, 정말 하나님과 지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지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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