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라마로 피하다(삼상19:18-24) |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은 온 백성에게 영웅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사랑하고 칭송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다윗이 두려웠습니다. 그 두려움은 극도의 미움으로 바뀌었고, 사울은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되어 다윗을 죽이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다윗을 은밀하게 죽이려 했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라고 명했습니다.(1절) 이때 요나단이 다윗을 변호해서 다윗을 죽이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곧 번복하고 집요하게 다윗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궁궐에 머물 수 없어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다윗은 사울과 백성을 위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 충성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그가 받아야 할 것은 상이 아닙니까? 박수를 받고, 인정받고, 높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음의 자리로 내몰렸습니다. 지금 다윗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고난을 받는 것은 ‘그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라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고난을 통한 신앙의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쫓기고 쫓겨 라마에 있던 사무엘에게로 도피했습니다.(18절)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이자 활동 중심지였습니다. ‘나욧’은 지역이 아닌, 거처를 말합니다. 이곳은 선지자 훈련생들이 모여 훈련하는 신학교였습니다. 나욧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일들이 가득했고,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든든한 요새로,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에게로 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고, 말씀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으로 피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라마에 있다는 소식을 알고, 다윗을 죽이려 자객을 세 번이나 보냈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사울이 직접 라마로 갔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에게 죽임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사울의 뜻은 무산되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쳤습니까? 그래서 절망하며 고통 중에 있습니까? 그 어둠과 절망과 고통에 맞서지 마십시오. 그 고통, 억울함, 절망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맞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를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 피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오히려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파멸과 심판에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잠시 어둠이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빛이 기다리는 터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할 곳은 하나님 앞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곳입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고 성령이 강하게 역사할 때, 그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문제가 해결되며, 하나님의 사람이 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