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삼상2:11-21)

  본문은 사무엘이 성장하는 과정을 엘리의 두 아들과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으나(11절),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12절)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는데도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 그 이름과 형식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을 이용할 생각만 하며,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 아들들의 만행을 13절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습니다. 율법에 제시된 제사법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행사했고, 간음하며 온갖 만행을 다 저질렀습니다. 이들이 이런 악행을 자행한 것은 ‘하나님을 멸시했기’(17절)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만행을 보면서 혹자는 ‘나는 결코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일에서 자유 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높은 자리, 자기가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면 욕심껏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도 자꾸 갈고리로 찍어 내 것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 욕심의 갈고리를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똑바로 서고자 하는 태도뿐입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만이 그 욕심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섬겼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이들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에봇을 입었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고, 전하는 데 철저한 훈련을 받으면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음을 말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점점 죄악을 저지르고 있을 때, 사무엘은 점점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더욱 받았습니다.(26절) 이처럼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의 명암이 엇갈립니다. 왜냐하면 엘리의 아들들은 악을 선택했고, 사무엘은 하나님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엘리 가문의 과거는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영광과 거리가 먼 나쁜 행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을 달아 보시고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도 존중히 여깁니다.(30절) 하나님은 엄중한 경고에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 가문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모호한 음성이 아닌, 불확실한 경험이 아닌, 이 땅에 몸으로 오신 예수님과 선명하고 정확하게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들어오십시오. 그러면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회복할 것이며, 잃어버린 능력을 회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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