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하듯 하라(엡6:5-9)

 본문은 종과 상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의 노예제도는 경제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인구의 절반가량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종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고, 재산이며 물건이었습니다. 종의 운명은 주인에게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노예제도에 역점을 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의 성격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듯이 오늘날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말씀입니다.

 종들은 두려워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5) 종이 취할 태도는 ‘두려워하고 성실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실제로 종들이 자발적으로 성실하게 일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종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보상이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마지못해 일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의 상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일을 감당할때에 주님을 섬기듯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성실함은 인간의 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려움과 성실함은 종이 주인을 그리스도처럼 대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없으면 주인의 명령에 성실히 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종들은 눈가림으로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6절) 눈가림이란? 겉만 꾸며 남을 속이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것이 전부여야 합니다. 이면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간에 항상 같은 모습이어야 합니다.

 상전들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9a)고 했습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종이 상전에게 복종하듯이 상전들도 종에게 진심으로 잘 대하라는 것입니다. ‘피차 복종’의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상전들은 낮은 사람들에게 위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높은 사람의 위협에 대처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심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 아랫사람들을 부려 먹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상전들의 상전이 하늘에 있다.’(9b)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인식을 하면 나보다 낮은 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9c) 즉 하나님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해서 그들이 저지른 불법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분이 아니며, 어느 누구나 동일한 기준으로 공정하게 판단하신다는 뜻입니다.

  관계는 상호적이고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일방적이고 비인격적인 관계, 배려가 없는 관계는 세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존귀하게 보고, 관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는다.(8절)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