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눅23:26-43) |
예수님은 십자가형의 선고를 받으시고 골고다로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끌고 가던 자들은 구경하고 있던 구레네에서 온 시몬을 붙잡아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26절) 시몬은 두 아들(막15:21)과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중에 예수님의 호송행렬과 우연히 마주쳐 구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얼떨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면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 후 그는 신실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의 신앙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쳐 아들인 루포가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롬16:13) 억지라도 십자가를 지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실 때, 그 길을 따라오면서 우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27절) 이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이 여인들은 진심으로 슬퍼하며 애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며 예수님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지금 너무나 외롭고, 괴롭고, 아픈 길을 걷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결코, 울지 않았습니다. 그 길을 마지못해 억지로 가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당당하게 걷고 계셨습니다. 왜냐면 십자가의 길은 부활과 승리의 길이요, 죄인들을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위해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울 것이 아니라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28절) 예수님은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울어야 할 대상은 구원의 소망 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 채 멸망을 향해가는 인생들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안위보다는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행악자와 함께 나란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과 두 행악자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방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방한 사람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위 중 옳지 않은 것이 없었다.’(41절)며 예수님께 그의 나라에 임하실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42절) 그는 비록 죄수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마지막에 구원을 받았습니다.(43절) 죄의 기준은 예수님의 사랑을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선언했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행악자로 낙인찍혔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사건임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진노를 피하는 길입니다. 십자가가 없었으면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 우리가 당할 수치를 예수님이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