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침묵(눅23:1-12)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로마 법정에 예수님을 고발한 내용은 ‘백성을 미혹했다는 것, 가이사에게 납세를 거부하고, 자칭 그리스도라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로마가 가장 싫어하는 죄목으로 최고 법정형으로 처벌할 죄목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허위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기소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만,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길 바라며 재판하게 됩니다. 빌라도는 세 가지의 죄목 중에 두 가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협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대신 세 번째의 혐의에 주목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절)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라며 간접적으로 시인하셨습니다. 빌라도가 말한 ‘유대인의 왕’은 정치적 측면으로 물은 것이나, 예수님의 대답은 영적인 측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로 자신이 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이 왕이라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그것이 세상의 권력과 무관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예수님께 반역의 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4절) 그러자 무리가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5절) 난처하게 된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갈릴리를 다스리고 있던 헤롯왕에게 떠넘겼습니다.(6-7절)

  헤롯은 평소에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기에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8절) 그는 예수님에 대해 진지하게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을 향하고 있는 예수님을 단지 서커스 공연을 구경하듯이 자신의 흥미를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헤롯의 마음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그의 질문에 침묵하셨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상대할 가치도 없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결국, 헤롯은 예수님을 재판할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마음껏 희롱하고 왕의 옷을 입혀 어릿광대로 만들어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11절)

  그동안 빌라도와 헤롯은 반목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서로 한패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얻기 위해 원수와도 야합하는 부패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들의 이권 앞에서는 진리도, 진실도 무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은 영혼 구원보다는 세상의 권력과 출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공회원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죽이고자 예수님을 빌라도에 넘겼고, 빌라도도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자, 헤롯에게 넘겼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나 그의 관심은 구원과 생명이 아니라 단순히 기적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허위로 궁지에 몰아넣었어도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침묵 속에는 당신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결연한 사명이 담겨있습니다. 이 침묵이 곧 우리를 사랑한다는 강력한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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