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들에게 맡겨진 므나(눅19:11-27)
사람들은 예수님이 곧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 왕이 되셔서 로마 정부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 로마로부터 독립이 될 것이고, 해방되어 자유롭고 풍성한 삶이 될 것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므나 비유를 하셨습니다. 므나 비유를 통해서 사람들의 오해를 시정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합당한 삶에 대해 교훈하시고자 했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마25:14-30)와 비슷하지만, 내용과 강조점이 다르고 목적하는 바도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재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차등하여 나누어 주었으나 므나의 비유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한 므나씩을 주었습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일반적인 사명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준 사명, 즉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라’(마28:19-20)는 사명을 주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인자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10절)고 말씀하신 후,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므나가 곧 소외된 사람, 잃어버린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므나를 주고 장사하라고 한 것은 한 영혼을 찾아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소외당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에 관심을 쏟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들을 외면한 채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주인은 한 므나씩 맡기고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한 므나는 3개월의 월급 정도입니다. 그러니 사업하기에 애매한 돈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언제 올지도 불분명합니다. 아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2명은 주인이 왕으로 오실 것을 믿고 순종하여 칭찬을 받고 상급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명 감당하기에 불확실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사명 감당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사명 감당하기에 환경과 여건도 여유롭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확신도 없고, 오신다고 해도 언제 오실지도 모릅니다.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사명에 순종할 것인가를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삭개오는 그 요구에 순종해서 그와 가정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당신께 순종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가장 귀한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다실 오실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설 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때까지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사십시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