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눅17:1-10)
본문은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마음과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먼저 인간이 연약하여 누군가를 시험에 빠지게 하는 일로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만,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1절) 즉 먼저 믿은 사람들이 신앙이 연약한 자들에게 실망을 주어서 예수님을 떠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화를 당하기 때문에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을 큰 죄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책망과 용서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3-4절)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경고하라고 했습니다. ‘경고’는 ‘책망’을 뜻합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죄를 다뤄야 하지만, 그가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야 합니다. 그가 진심으로 회개했는지를 알 수 없을지라도 무제한으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감당할 수 없기에, 믿음을 더해달라고 요청합니다.(5절) ’더하소서’는 ‘추가하다.’는 뜻으로 이미 소유한 것에 그 무엇을 더해달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이미 믿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전재하며 믿음을 더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양적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현재 소유한 믿음보다 더 많은 믿음을 소유해야만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요청에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6절)이라고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작은 것을 상징합니다. 비록 작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으면 엄청난 성장을 하듯이, 아주 적은 믿음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다면 그 믿음을 통해서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의 ‘양’(量)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예수님은 믿음의 ‘질’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은 크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능력을 철저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큰 믿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큼 자신의 힘을 빼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당시에는 바리새인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의 비유(7-10)를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종은 자기의 임무에 충성을 다한 후에도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귀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모두 주님이 하라고 해서 했고, 또 주님이 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셔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단지 순종하는 종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이 온전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