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두려워할 분(눅12:1-12)

  예수님은 존경받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 곧 위선을 경계하라.’고 하셨습니다.(1절)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만 했지, 본질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외형은 잘 갖추어져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고, 생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잘된 면은 드러내고 자기의 부족한 면을 숨기는 것이 위선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살지 않는 것이 위선입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이 위선적으로 산 까닭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은 다 드러납니다.(2-3절) 하나님 앞에서 감추어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리새인의 모든 위선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반드시 드러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실을 말해야 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말하는 자는 반드시 드러날 것을 알고 말해야 합니다. 감출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4-5절) 사람들을 의식하면 세상이 두렵습니다. 그들이 나를 무시할까 봐 두렵고, 소외시킬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의식하지 않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내 삶은 그들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보호하시며 통치하셔서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길 때, 이 두려움은 극복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늘의 권세를 가지시고 우리를 세세하게 돌보시며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주인으로 시인하라고 하십니다.(8-9절)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면 하나님 앞에서 부인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믿음 때문에 핍박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못 했습니다. 권세자들 앞에서 그들의 믿음은 연약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은 바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히려 예수님을 담대히 증언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위선적인 삶을 살고, 세상의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주님을 시인하지 못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기는 길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여전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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