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오려거든(눅9:18-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8절)라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말합니다.’(19절)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약의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20절)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으신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진리이며,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너는 예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신 분입니다.’라는 확고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나의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면 그 고백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23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부인하다.’는 ‘포기하다.’ ‘거절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 포기와 자기 거절을 말합니다. 즉 옛사람을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나 자신의 안일과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24절에서는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고 싶으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인생을 선택하라는 뜻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로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으며 이 싸움을 회피하면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영혼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영혼이 병든 사람은 세상의 것을 아무리 많이 지니고 있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영혼을 돌보지 않고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며 살려는 사람들은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될 뿐만 아니라, 이 멸망의 세계로 잡아당기는 세력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당하게 될 것입니다.(25절)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그 영혼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수치스럽게 할 것입니다.(26절)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거부하는 이들을 심판 때에 단호하게 단죄할 것을 예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을 거절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을 감수하며, 날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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