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8:22-25)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거라사인으로(26절) 가고 있을 때, 광풍이 호수로 내리쳐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23절)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치자 제자들은 광풍을 감당해 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워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고,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한 배에서 똑같은 광풍을 만났는데 예수님은 평온히 잠자고 계셨고, 제자들은 두려워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이 서로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평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었기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25절)고 반문하셨습니다. 이는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뜻입니다. 삽시간에 닥친 고난으로 순식간에 잃어버린 믿음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간에 잊어버린 믿음을 되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다급해지자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때 예수님을 ‘주여’(24절)라고 불렀습니다. ‘주여’라는 단어를 ‘에피스타타’로 표현했습니다. 에피스타타는 ‘곁에 서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돕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를 돕는 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람과 물결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24절)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인 예수님을 단순히 도와주는 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는 고백은 ‘주인’을 의미하는 ‘퀴리오스’입니다. 곧 ‘예수님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라는 고백을 원하십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내 인생을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삶이 순풍일 때는 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광풍이 불면 은혜의 고백이 쏙 들어가고 믿음 없는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극한 상황에서 믿음의 능력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왜 알고 있는 말씀을 적용하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왜 말씀대로 행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약속한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광풍을 보지 말고 광풍을 잠잠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그 믿음대로 역사가 나타납니다.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전능하신 주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내 인생을 철저하게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가십시오. 그것이 믿음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