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게으름(삼하11:1-13)

  이스라엘은 다윗의 조문 사절단에게 조롱과 모욕을 준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겼으나 완전히 전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그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왕이 출정하여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출정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낮잠을 자고 저녁에 왕궁 지붕 위를 한가로이 걸었습니다.(2절) 다윗의 나태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으로서의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이 나태함(게으름)이 곧 다윗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 벌어지는 시발점이 됩니다.

  옥상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다윗은 그가 누군 인지를 확인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밧세바였고, 그의 남편은 현직 군인인 ‘우리아’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성스런 신하의 여인을 넘보아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결국 그녀와 동침하여 아이까지 임신시켰습니다.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여기서 멈추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더욱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동안 다윗의 행동과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이렇게 딴 사람으로 돌변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27b)고 했습니다.

  다윗이 왜 이처럼 타락했을까요? 이 일은 ‘한가하게 낮잠을 자고 옥상에서 거닌 데’서 시작되었습니다.(2a) 즉 다윗의 게으름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전쟁터에 있어야 합니다. 그게 다윗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고 안일하게 왕궁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전쟁터에 있었다면 기도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전쟁터는 위험한 곳이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때문에 오히려 은혜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하나님을 사모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니,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기쁨을 얻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만족을 위해 쾌락을 좇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조금이라도 영적인 게으름을 피우면 금방 사탄이 침투하여 죄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인간의 원래 본성인 죄악으로부터의 즐거움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당장 세상의 쾌락을 좇게 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후의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게으름에 빠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

  다윗이 가장 신앙이 좋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아무것도 없을 때였습니다. 들에서 양을 칠 때, 광야에서 나그네로 힘겹게 살 때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모든 것을 가지게 된 후,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데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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