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라(눅12:22-34)
현대는 복잡해졌고, 할 일들이 많고 다양하다 보니 염려도 많아졌습니다. 염려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전혀 염려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염려, 근심, 걱정을 아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염려하다’는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염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염려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마음이 양분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계가 막막할 때, 큰 문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염려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숨과 몸이 음식이나 의복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음식과 의복보다 더 귀중한 몸을 하나님이 돌보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나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까마귀와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24-27절) 까마귀는 농사를 짓지 않고, 수확도 하지 않지만 잘 삽니다. 하나님이 까마귀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까마귀보다 더 귀한 우리에게 양식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들의 핀 꽃의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 위해서 바느질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만큼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가 과연 있느냐? 세상에서 가장 부자로 산 솔로몬조차 그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지 못했다. 덧없는 꽃들을 위해서도 그토록 정교한 일을 하신다면, 꽃보다 더 존귀한 너희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염려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십니다.(30절) 알고 있다는 것은 채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채워 주셨듯이 앞으로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책임지신다는 믿음으로 세상에 대한 염려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있는가에 대한 염려입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먹을 것, 즉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소망은 사라지고 그 소망이 사라지면 삶의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이 소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소망이며,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세상의 사라질 것을 가지고 염려하기보다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